오늘도 나는 상담실 의자를 두 개 맞대어 놓고 그녀를 기다렸다. 이혼 서류는 이미 작성되었고, 도장은 아직 찍지 않았다. 문이 열리자 그녀는 얇은 미소를 걸치고 앉았다. “잠이 안 와요. 무섭고, 미안하고, 화가 나요. 다 제 잘못 같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물컵을 밀어 주었다. 우리는 오래 말하지 않았다. 슬픔은 종종 침묵의 모양을 하고 찾아온다.
“지금 가장 지키고 싶은 게 뭘까요?”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다. “아이, 그리고… 제 호흡이요.” 좋은 답이었다. 관계와 몸, 둘 다. 이혼은 관계의 형식이 바뀌는 사건이고, 몸은 그 변화를 제일 먼저 알아채는 감지기다. 우리는 오늘의 목표를 크게 세우지 않기로 했다. 거창한 결심 대신, 작은 반복을 택했다.
첫째는 호흡이었다. 긴장하면 어깨부터 올라가는 버릇이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 어깨가 들리지 않도록, 배가 앞뒤로만 움직이도록 안내했다. 열을 세며 내쉬고, 다섯을 세며 들이마시고, 다시 열을 세며 내쉬는 연습. “지금 여기”로 자신을 데려오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둘째는 생활의 틀을 세우는 일이었다. 아침을 건너뛰고 밤늦게 과자를 찾는 날이 많았다. 우리는 ‘반듯한 하루’ 대신 ‘살짝 반듯한 하루’를 적었다. 기상 시간을 20분만 앞당기고, 햇볕이 드는 창가에 3분 서 있기, 단백질이 있는 아침 한 조각. 실패해도 괜찮다는 문장을 일정표 맨 위에 써 두었다. “오늘 못 했으면 내일은 절반만.”
셋째는 경계였다. 오랜 시간 자신을 희생하며 버텨 온 사람에게 ‘경계’는 낯선 단어다. 사랑과 예의, 책임을 오래 붙들고 살다 보면 ‘아니오’는 잘 써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녀의 휴대폰에 간단한 문장을 저장했다. “지금은 답하기 어렵습니다. 내일 오전에 다시 이야기할게요.” 경계는 공격이 아니라 복구를 위한 시간 확보다.
넷째는 안전한 사람의 목록을 만드는 일이었다. 큰 위로보다 짧고 안정적인 연결이 필요했다. “오늘도 버티느라 고생했다” 정도의 문장을 받아 줄 수 있는 사람 세 명. 그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세 줄짜리 문자를 보내 보기로 했다. 대화가 길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관계는 얇고 잦게 이어 붙이는 것이 회복기에는 더 안전하다.
그녀는 종종 말했다. “저는 실패한 것 같아요.” 그때마다 나는 반문했다. “실패가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중이면 어떨까요?” 그녀는 나직하게 웃었다. 오래 누적된 죄책감은 한 번의 대화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죄책감의 자리를 조금씩 줄이는 일은 가능하다. 우리는 수첩에 아주 작은 증거들을 적어 넣었다. “오늘 10분 걸었다.” “아이와 저녁을 같이 먹었다.” “불을 끄고 침대에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 표시들은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섬을 잇는 다리처럼 삶을 연결해 주었다.
한 번은 상담이 끝날 무렵,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선생님, 저… 잘 살 수 있을까요?” 나는 잠시 말을 고르고, 내 마음속에 오래 품고 있던 문장을 꺼냈다.
“당신의 삶이 공작의 날개처럼 활짝 펼쳐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나는 덧붙였다. “공작의 날개가 항상 펼쳐져 있는 건 아니에요. 접고 서 있는 시간이 더 길죠. 하지만 필요할 때, 자신의 속도에 맞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펴 볼 수 있는 능력—우리는 그걸 연습하고 있어요.”
그날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 컵을 샀다고 했다. 아침마다 그 컵으로 물을 마시며 호흡을 세어 본단다. 아이에게는 “오늘은 조금 잘 버텼다”고 말했고, 아이는 “엄마, 반짝이야” 하고 웃었다.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일상이지만, 이 시기에는 그런 사소함이 가장 거대한 진전이다. 변화는 요란하지 않다. 시나브로, 아주 작은 소리로 도착한다.
이혼은 하나의 끝이자 다른 형태의 시작이다. 서류를 내는 날도 있을 것이고, 눈물이 멈추지 않는 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곡선은 끊어지지 않는다. 잠깐 굽이칠 뿐이다. 우리는 상담실에서 그 굽이의 이름을 붙이고, 무게를 같이 들어 본다. 혼자 들기에는 무거운 감정이 함께일 때 비로소 옮겨질 수 있다는 걸, 나는 매일 배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바로 그 길목에 서 있다면, 당장 크게 펴지지 않아도 좋다. 오늘은 깃털 한 올만 펼쳐도 충분하다. 그 한 올이 내일의 두 올을 부르고, 언젠가 몸이 기억할 것이다. 접었다 펼치는 법, 펼쳤다 다시 쉬는 법, 그리고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나는 다음 주에도 의자를 두 개 맞대어 놓고 그녀를 기다릴 것이다. 그 사이 그녀가 얼마나 펴 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연습을 멈추지 않는 마음이다. 우리가 함께 적어 내려간 증거들이 언젠가 한 장의 커다란 날개가 될 때까지, 나는 조용히 곁에서 박자를 맞출 것이다.
다시 한 번, 그 문장을 당신에게도 건넨다.
당신의 삶이 공작의 날개처럼 활짝 펼쳐졌으면 좋겠습니다.
빛이 닿을 때 반짝이는 그 잠깐의 순간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려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