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이 없는 날에도 그는 지쳐 있었다. 일 자체가 힘들다기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하루가 더 고단하다고 했다. 칭찬은 귓속말이고, 지적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부탁은 어느새 지시가 되었고, 상사의 불안은 빨간 느낌표를 달고 메신저로 날아왔다. 그는 말했다. “업무가 아니라 사람이 버겁습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어렵다면 계획을 세우면 된다. 하지만 사람이 어렵다면, 계획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그럴 때 상담은 일과 사람을 분리하는 연습부터 시작한다. 역할과 감정, 결과와 관계의 경계선을 다시 긋는 일이다.
그에게 물었다. “오늘 당신이 컨트롤할 수 있었던 건 무엇이었나요?”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나는 종이에 두 개의 칸을 그렸다. 왼쪽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 오른쪽엔 당장은 바꾸기 어려운 것. 왼쪽 칸에 작은 것부터 적었다. 회의 시간을 50분으로 멈추기. 이메일은 오전과 오후 두 번만 열기. 메신저의 즉시 답장 강박을 줄이는 안내 문장 하나 만들어 두기. “지금은 확인이 어려워, 오늘 4시까지 회신드리겠습니다.” 이 짧은 문장으로도 하루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그는 사람 문제를 일을 더하는 방식으로 풀려고 했다. 야근은 일시적으로 관계의 마찰을 가려 준다. 하지만 다음 날은 더 곤두서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접점을 설계했다. 꼭 필요한 순간에만 말하고, 말할 때는 역할의 언어로 말하기. “이 부분은 A팀이 맡고, 저는 B의 범위를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정으로 밀고 들어오면, 감정에 답하지 말고 역할로 다시 서는 연습이다. 처음엔 딱딱해 보이지만, 이런 건조함이 관계를 지켜 준다.
나는 또 하나의 작은 습관을 제안했다. 하루의 끝에 ‘나에게 보내는 보고서’를 쓰는 일. 오늘 버린 것과 지킨 것을 각각 한 줄씩 적는다. 버린 것: 불필요한 비교, 늦은 밤 즉시 답장. 지킨 것: 점심 20분, 회의 50분제, 경계의 문장. 하루를 성공과 실패로 나누지 않고, 선택의 누적으로 바라보면 시선이 부드러워진다. 스스로를 다그치던 목소리는 조금씩 물러난다.
그는 사람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먼저 답답해졌다고 했다. 그래서 몸부터 풀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굴리고, 턱 힘을 빼고, 먼 곳을 몇 초간 바라보는 짧은 루틴. 꺼지는 게 아니라 밝기를 낮추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몸이 조금 견딜 수 있어야 말이 부드럽게 나온다. 말이 부드러워야 경계가 설 수 있다. 경계가 서야 관계가 덜 상처 난다. 순서가 있다.
어느 날 그는 말했다. “변한 게 별로 없는데, 조금 덜 미치겠습니다.” 외부가 바뀐 게 아니라, 자신 편을 한 명 얻었기 때문이다. 그 한 명이 바로 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같은 무게도 다르게 느껴진다. 메신저의 빨간 느낌표는 여전히 뜨지만, 그는 더 이상 즉시 뛰쳐나가지 않는다. 중요한 일을 먼저 정리하고, 정해 둔 시간에 응답한다. 어떤 동료는 불편해했고, 어떤 동료는 금세 익숙해졌다. 불편함을 지나가는 능력도 일종의 기술이다.
우리는 불화가 생겼을 때의 문장도 준비했다. “이 부분은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혹시 제가 놓친 게 있다면 알려 주세요.” 방어 대신 확인을, 해석 대신 질문을 앞세우는 태도다. 상대의 말투가 거칠어지면 속도를 낮추고, 회의실에서 감정이 격해지면 잠깐 멈추자는 제안을 먼저 꺼낸다. 협업은 속도전이 아니라 호흡전이다.
상담이 끝날 때쯤 그는 여전히 사람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는 여전히 덜 배려했고, 누군가는 여전히 자기만 급했다. 그래도 그는 말했다. “예전엔 그들이 나를 끌고 다녔는데, 지금은 내가 나를 끌고 가는 느낌이에요.” 이것이면 충분하다. 삶이 한꺼번에 반짝이지 않아도, 가장자리가 조금 덜 날카로워지는 변화는 분명하다.
사람 때문에 힘들어 회사를 떠나고 싶을 때, 우리는 보통 회사 전체를 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종종 필요한 건 퇴사가 아니라 설계다. 내 시간과 말, 시선과 몸의 밝기를 다시 설계하는 일. 그 설계가 자리 잡으면, 떠날지 머물지는 그다음에 더 정확히 결정할 수 있다. 선택은 넓어지고, 숨은 길이 보인다.
그는 다음 주에도 올 것이다. 우리는 또 작은 칸을 채울 것이다. 오늘 버린 것 한 줄, 지킨 것 한 줄. 한 줄이 모여 하루가 되고, 하루가 모여 방향이 된다. 일보다 사람이 힘든 날에도, 그는 자신을 잃지 않는 방법을 배워 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 배움이 누적될수록, 같은 자리에서도 다른 방식으로 서 있을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어른의 회복력이라고, 나는 조용히 적어 둔다.